모든 건 사촌의 짓궂은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언니. 스완 오빠랑 그렇고 그런...사이인 거 맞지?"
스완을 짝사랑한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그건 퍽 민감한 주제였다.
"아냐. 우린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친구야. 이건 시아, 너에게만 말하는 거지만... 예쁘장하고 마른 금발 남자는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럼 언니 취향은 어떤 건데?"
"음...그러니까...."
근처의 일간지 하나가 우연히 내 시야로 들어왔다. 흑발의 남자가 찍힌 기사 속의 사진을 나는 대충 가리켰다.
"아! 여기, 이 사람이야. 내 이상형."
"레오나드 폰...스펜서...?"
"난 그런 곰처럼 듬직하고 세보이면서 남자다운 사람이 좋아."
그 때는 몰랐지. 잠깐의 응변이 내 일생 최대의 실수로 남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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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친구에게 고백 한번 못 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에겐 파랑새같은 어린 약혼자가 있기에.
사랑에 회의감이 든 나는 아무 남자를 만나고 차고, 만나고 차고를 반복했다. 오는 놈은 환영하고 가는 놈은 붙잡지 않았다.
그러기를 삼년째. 어느새 나는 사교계에서 유명한 호색 악녀로 소문이 나 있었다.
내 소꿉친구는 나를 재활용도 못할 쓰레기를 보듯이 경멸 어린 눈길로 보았다.
"라일라. 네가 이렇게 남자를 밝히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
"한 사람에게 영원히 얽매이기 전에 좀 즐기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꼭 그렇다기보단…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리는 건 문제가 되지. 가령, 레오나드 후작같은."
까맣게 타서 재만 남은 줄 알았던 내 마음은 허망하게도 금세 또 다시 불타올랐다. 겨우 그 조소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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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이젠 욕심을 좀 내고 싶은데.”
“…?”
“너를 스쳐간 수많은 남자들 중에…나도 그저 그런 하나가 되긴 싫다고, 라일라.”
남자는 애닳은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붉은 혀로 내 손등을 할짝였다.
집착으로 뭉친 그의 눈이 이제껏 어떻게 그것을 숨겨왔는지 모를 정도로 숨 막히게 나를 바짝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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