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은발 외국인이 쿠빵 유니폼을 입고 새벽 배송을 왔다.
나는 수령인이 이상하게 찍혀있는 상자를 열었다. 웬 삐까번쩍한 장검이 들어있는데...유물같은 건가?
"이게 뭐죠?"
"성검입니다."
쿠빵 배달원이 생긋 웃으며 희한한 말을 내뱉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성검이 새벽배송으로 배달되었다.
***
과로사로 죽어버린 내 영혼은 성검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전송되었다. 혹시라도 부잣집 악역영애가 되었나 기대를 했건만 가진 거 하나없는 고아 신세는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특이한 성검의 주인이라는 것.
[안녕하세요, 루크나 주인님. 당신의 성검, 비스비입니다.]
인공지능을 닮은 성검은 기능이 꽤 쏠쏠했다.
"하이 비스비, 여기서 빠져나갈 탈출구 알려줘."
[네에, 지금 공간을 분석하고 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비스비, 해독제는 어디에 있지?"
[백작가 사저 2층, 백작의 서재 비밀 서랍으로 위치정보가 나옵니다.]
하지만 묘하게 인간다운 구석이 있었달까.
[주인님? 제가 열심히 알람을 울리는 데도 쓰레기처럼 누워계실 건가요?]
[주인님의 근육량이 감소했어요. 괜찮아요. 주인님이 일찍 죽으면 비스비는 다른 주인 찾으면 되니까.]
그렇게 성검의 도움을 받아 쭉쭉 성장하며 이 세계에 적응하는 것도 잠시.
"너, 광장에 꽂혀있던 성검 진짜 못 봤어?"
원래대로라면 성검을 뽑았어야 할 학교 수석, 마티안 위그래츠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며칠 전부터 나를 감시 중인 섬뜩한 놈. 지금도 알 수 없는 피냄새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 그럴 리가. 학교 꼴찌인 내가 성검을 어떻게 뽑겠어."
나는 그가 뿜는 흉흉한 살기를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말이 학교지 이곳은 그야말로 정글. 까딱하면 대련을 핑계로 죽을 지도 몰랐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성검을 잃은 마티안의 성향이 피폐 집착 광공형으로 변화했습니다. 주인님이 선호하는 남자 유형과 91%일치! 오늘 밤, 그를 유혹해보아요!]
'닥쳐, 비스비. 지금 저놈은...'
루크나는 시선을 들어 학교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제국 남성교육의 산실이라 적힌 이곳은.
'내가 남자인줄 안다고.'
남자만이 입학할 수 있는 세인트 사관학교였다.
***
마티안 위그래츠는 기숙사 꼭대기층 외진 방을 벌컥 열었다. 루크나의 방은 텅 비어있었다. 작은 쪽지와 함께 루크나가 뽑은 성검이 그곳에 남아있었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했어, 마티안.]
"이 자식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마티안은 불안하게 뛰는 심장께를 꽉 쥐면서 괴로운 듯 인상을 썼다.
이건 아마도 분노일 것이다. 아무말 없이 도망가버린 루크나에 대한 분노. 같은 사내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던 감정은 분노여야 옳았다.
그렇게 식지 않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던 어느 날, 머릿속으로 성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검을 갖지 못한 자, 마티안. 우리 함께 피폐 집착 광공이 되어 도망간 루크나 주인님을 찾아볼까요?]
그리고 루크나와 똑 닮은 여인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녀가 웬 쭉정이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마티안의 가느다란 이성은 뚝 끊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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