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넌 죽을 운명인 아이였단다."
선대 공작부인은 제 아들을 대신해 황량한 성에서 죽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보잘 것 없는 목숨을 내가 사들였지."
그리고 난 황실에서도 버림 받은 백색증을 앓고 있는 아이였고.
"넌 내 아들을 대신해 이 성에서 죽을 거란다."
그녀는 물건을 구매하듯 값싼 가격표를 매겨 나를 구매했다.
"그 비천한 목숨을 쓸모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됐으니 내게 감사하렴."
어차피 죽을 목숨 거둬줬으니 제게 감사하란 말과 함께.
*
"그 여자랑 결혼한 걸 죽도록 후회해."
술에 취한 당신은, 나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말했다.
가슴이 칼로 도려낸 듯 아렸으나 괜찮았다.
백색증 환자로 태어나 황실에서도 버림받은 나 따위가 당신을 욕심 낸 것부터 잘못이었을 테니까.
나는 기꺼이 당신 곁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이...내게 아주 잠깐의 시간만 허락했다면 좋았을 텐데.
"잘 부탁드려요, 공작 부인."
기어코 당신은 그 여자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마지막까지 품위를 지키라는 차디찬 말과 함께.
모든 미련이 쓰러졌다.
그제야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을 등진 채 떠날 수 있었다.
*
"돌이키기에 늦은 건 알지만, 부탁할게."
따뜻한 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몸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디,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와줘."
근데 왜 당신은 이제 와 내게 말하고 있을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후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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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고디바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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