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삼식이, 길동이, 용팔이, 개똥이. 에, 또 누가 있더라…. 그동안 만나온 남자의 이름을 노트 위에 하나하나 적어 보았다. 밤을 같이 보낸 남자 대략 열여섯 명, 개중 낮도 함께 보낸 남자는 아마 서너 명쯤. 손잡고 하염없이 거리를 걷거나 서로를 서로의 친구에게 소개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자가 나와의 깊은 관계를 부담스러워한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러했는지도 모른다.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났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는 자신이 나의 운명의 남자라고 줄기차게 떠들어댔다. “저 요리도 잘하구요, 화장실에서 앉아서 싸요. 저를 가지세요!”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결국, 이상한 남자에 버금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피어올랐으니 말이다. 운명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몹시 고민스러웠다. 결혼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지.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박 터지게 싸운 날에는 친정도 없는 이역만리에서 그 서러움을 어찌 풀어야 할지. 한국말로 밥 벌어먹고 사는 내가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벽안의 남자를 남몰래 짝사랑하게 되면 어찌해야 하는지. 만일,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해낼 수 있을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확신이 아무래도 서지 않았다.그리하여 주변 여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혼 후 새로운 애인과 연애 중인 첫째 언니, 결혼하여 무난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틈만 나면 놀러 나가는 둘째 언니, 남편으로부터 미치도록 도망치고 싶었으나 사십 년째 기혼으로 지내는 엄마, 비혼으로 살고자 했지만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해 얼결에 기혼이 된 고등학교 친구, 꼭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래도 결혼하고 싶은 대학 동기. 나와 결이 비슷한 여자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 나, 이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