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숨어 있던 광기가 폭발한다!폭력에 무감각해진 이 시대를 깨우는 중·단편소설 9편극한까지 서사를 밀고 나가는 힘으로 거짓과 위선이라는 두꺼운 허물을 벗겨내는 작가, 전상국. 9편의 중·단편은 각각의 색채를 가지고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탐구한다. 폭력의 대상은 학급에서 우상처럼 여겨지는 소년이 되기도 하고, 서울로 올라와 식모살이하는 열아홉 소녀가 되기도 하며, ‘그 새끼’의 귀신에 덮씌워진 미치광이 형이 되기도 한다. 누가 이들을 미치게, 혹은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걸까? 작가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폭력의 문제를 예리한 촉수로 섬세하게 들여다본다.이 책의 문을 여는 작품인 「플라나리아」는 환상적 기법으로 쓰인 종족 보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플라나리아는 여러 토막을 내도 각 개체가 다시 하나의 완성된 몸으로 자신을 복제해낼 뿐 아니라, 무성생식과 유성생식도 병행한다. 작가는 플라나리아를 닮은 한 여자의 증발을 소재로 파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들의 날개」는 무속신앙에 얽매인 한 가정의 이야기를 따뜻한 휴머니즘의 시선으로 그렸다. 점쟁이의 요사스러운 예언을 받고 태어난 두호. 살이 낀 둘째아들 두호가 죽어야 가장인 남편이 산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두호의 죽음을 은근히 바라기까지 하는데……. 「아베의 가족」은 발표 당시 문단에 일대 충격을 던진 소설로, 6·25전쟁 때 미군에게 윤간을 당한 어머니가 백치 ‘아베’를 낳고 비극적인 삶을 이어나간다는 이야기다. 전쟁의 폭력성과 함께 미군의 존재를 정면으로 물어 분단소설의 새 영역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아들이 어떻게 미쳐가는지를 그린 「침묵의 눈」은 광기로 활활 타오르는 단편이다. 한편 등단작 「동행」은 웃음소리를 ‘ㅎㅎ’로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 최초로 초성체를 사용한 소설로 기록되기도 했다. 거의 반세기 전인 1963년에 발표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당시 그런 식의 표기는 참신함을 넘어선 파격적인 시도였다.누군가의 고요한 세계를 깨뜨릴 강력한 소설 선집의 탄생. 작가는 광기에 찬 이 세계마저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