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산산이 부서진 남자> 빨간 하이힐, 붉은 립스틱, 배에 쓴 단어‘걸레’
벌거벗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자들
모든 것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폭풍우 치는 11월의 영국 서머싯에서 시작된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현수교에서 투신자살하려는 여자를 설득해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출동한다. 그러나 알몸에 빨간 하이힐만 신고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여자는 미처 말릴 새도 없이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당신은 이해 못 해”라는 말만을 남긴 채.
사건이 자살로 마무리될 무렵, 죽은 여자의 어린 딸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엄마가 절대로 자살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 높은 곳에 스스로 올라가다니 말도 안 돼요. 엄마는 고소공포증이었다고요!” 여자를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조는 소녀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곧 두 번째 여성 역시 알몸으로 자살한 채 발견된다. 그러자 수사팀이 꾸려지고 은퇴한 경찰 빈센트와 터프한 레즈비언 형사 베로니카까지 사건에 달라붙지만, 그때까지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적이 얼마나 교묘하고 냉혹한 괴물인지, 그리고 그와의 마주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법을 알아.
마음을 구부릴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고,
오만 가지 방식으로 마음을 조져버릴 수 있어.”

정신이 부서져버린 남자와 육체가 부서져가는 남자
몇 번의 마주침이 초래한 피할 수 없는 대결
“조 올로클린, 나는 네가 가진 모든 걸 원해.”

이 책의 주인공은 조 올로클린 교수. 아름다운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이 있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자, 몇 년 전 파킨슨병 선고를 받은 후로 육체와 정신 모두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는 임상심리학자다. 그 반대편에는 기드온이라는 이름밖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범인이 있다. 그는 전화 한 통만으로 여자들을 발가벗기고, 배에 ‘걸레’라는 말을 새기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수 있는 간악하고도 능란한 살인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분명한 것은 범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를 잡지 못하면 조 올로클린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는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주인공과 범인의 대결이라는 정통 스릴러 구조에 충실하다. 병으로 인해 몸이 부서져가는 주인공과 전쟁으로 인해 정신이 부서져버린 범인,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일인 주인공과 마음을 파괴하려는 범인 사이의 대결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쪽은 범인이다. 그는 말만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고, 그 어떤 문도 열고 들어갈 수 있지만,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는,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악당이다. 그는 악몽에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괴물이고,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고통받은 불행한 영혼이다. 그는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기는 힘들고,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범죄소설 사상 가장 강렬하고 입체적인 범인 중 하나다. 스티븐 킹에게서 “희생자들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만큼 설득력 있는 악마”라는 찬사를 얻어낸 이 범인에게는 모델이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전화 통화만으로 수백 명의 여자들을 협박하고 조종했던 ‘피터 도넬리’라는 인물이다. 이 사실을 알고 책을 읽는다면 소설 속 범인이 저지르는 일들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데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그와 대적해야 하는 조 올로클린은 그야말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다. 책임감 있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로 너무 우유부단하고 눈치 없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을 조 올로클린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그는 차츰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처럼, 그리고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처럼 우울하고 고독한 남자로 변해간다. 다름 아닌 미스터 파킨슨, 즉 육체를 서서히 잠식해 아무 곳에서나 다리를 고꾸라뜨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소도 제대로 지을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한 병 때문이다. 명석한 두뇌에 무너져가는 몸이라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이 심리학자는 때로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전신 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과 비견되기도 한다. 두 캐릭터는 모두 범인을 뒤쫓기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면서 정의를 실현하고 평범함을 성취하려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크나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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