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결코 삶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며, 이제 와서 구차한 참회의 눈물로 악인(惡人)의 탈을 벗어 보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음습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이 밀폐된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통로는 어차피 죽음 뿐. 이미 버릴 것은 다 버렸다. 젊은날 청조각(靑照閣)의 오십구인(五十九人) 비구니들을 능욕(凌辱)하며 맛보았던 그 짜릿함이며, 이후 악마행(惡魔行)으로 시종일관된 오십여 년, 심지어 무림공적(武林公敵)으로 쫓기다 제발로 걸어들어와 이곳에 감금된 십 년의 세월까지도....... 버러지같은 인생, 참으로 오래도 살았다. 이제 떨칠 수 없는, 아니 떨어내서는 안될 일을 마지막으로 처리해야겠다. 복수(復讐)라고 하면 악인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저 저승의 동반자가 필요하다고 말할까? 비밀을...... 오늘은 꼭 그를 만나서 무덤까지 품고 가기로 했던 그 비밀을 알려야겠다. 보이지 않아도 익숙한 바닥이다. 오래 전에 생기(生氣)를 잃은 손은 바닥을 기기에도 힘들고, 썩어빠진 육신은 칠흑덩이처럼 무겁다. 불로 지지듯 손가락 끝이 아픈 것은 손톱이 빠져서일 것이다. 문(門)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