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차가운 물줄기가 자신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자, 복잡해진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시현이 개운한 듯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br>그래, 이 느낌이다.<br>시현은 어렸을 적부터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br>차가운 물줄기가 자신의 몸속 깊은 곳을 울리며 떨어질 때면, 근심·걱정도 잠시나마 함께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시현에겐 오래 샤워하는 습관이 생겼고, 그런 그녀의 습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br>“지금도 오래 샤워하는 건 여전하네.”<br>자신의 집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들리자. 샤워가운만을 걸쳐 입은 채 욕실에서 나오던 그녀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기나긴 침묵 속에 시현의 부드러운 머릿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만이 자리를 옮겼다.<br>“평소보다 30분은 더 걸린 거 알아? 기다리다가 지쳐서…….”<br>남자는, 훨씬 전부터 시현의 샤워시간을 재고 있었다는 듯 칼같이 말하였다.<br>“……하마터면 들어갈 뻔했어.”<br>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야하게 자신의 귓가에 스며들자 그녀가 몸을 떨었다.<br>하도윤.<br><br>“여전히 그대로이더군. 마치 다시 와달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아 꽤 설레었네, 나.”<br>“아, 그건 내가 정신이 없다 보니, 깜…….”<br>“깜빡했다느니 그런 이유 같지도 않은 말을 할 거라면.”<br>도윤이 그녀를 벽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br>“미리 경고하는데 내가 속아줄 거란 생각 따위는 하지 마.”<br>그리고는 도윤이 탐스러운 시현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br><br>“말해 봐. 타당한 이유를.”<br>그 말과 함께, 한 마리의 양을 노리는 늑대와도 같이 도윤이 탐스러운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깊게 파인 쇄골 위로 자신의 입술을 지분거린다.<br>“……진실을 말하지 않으면.”<br>벌을 줄 거야.<br>나시현.<br><br>***<br><br>쾌락의 정점인 이곳에서, 난 너와 만났다.<br>화장기 없는 청초한 얼굴과 목 끝까지 단추를 여민 너는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br>우린 사랑했다. 그렇게 우린 죽을 때까지 서로만을 바라보기로 약속했다.<br>그러나,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넌 내 곁을 떠났다.<br>그 이유는, 비밀로 간직한 채.<br>그리고 난, 그런 널 끝까지 쫓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