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에피루스 베스트 로맨스소설!
한숨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꽉 막힌 인형 탈을 뒤집어 쓴 지서는 더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흘렸다. 겉으로는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탈속에 갇힌 그녀의 머리카락과 얼굴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10월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이 안은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물론 땡볕이 내리쬐는 진짜 여름보다는 나은 계절이었지만 끈적이는 땀이 고여 들기에는 탈속의 습도는 충분히 건조했다. 탈을 벗어내 땀이라도 닦아냈으면 싶었다.
더불어 가을의 시원한 바람도 느끼고 싶었지만 교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안해 그녀는 열심히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즐거운 웃음소리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모든 행동을 우뚝 멈춘 건 무심코 고개를 돌려 곰으로 변한 동료를 돌아봤을 때였다.
정확히 말하면 곰에게 바짝 다가서 무언가를 묻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서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졌다. 그녀가 분한 토끼의 모든 털이 하나하나 곤두선 것 같다.
두터운 인형 탈에 감싸인 머리에 한기가 스며들어 축축하게 땀으로 절었던 머리카락이 얼어버린 것처럼 쭈뼛 섰다. 4년 전 그대로다.
손을 흔들기 위해 들었던 팔을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지서의 시야를 가득 채운 인우는 헤어졌던 당시 그대로였다.
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막막한 인우의 시선이 앞을 향하다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하는 토끼를 발견했다.
어정쩡한 포즈로 그에게 고정된 토끼 한 마리에 인우는 그 인형의 속을 채운 사람이 지서임을 알아챘다.
4년하고도 9개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당당히 이별을 선언해버린 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는 두 다리를 움직였다. 한걸음에 그리워 아파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도, 또 한걸음에 아이의 존재를 숨겨버린 잔인함을 새겼다. 인우가 굳어버린 토끼에게 다가서는 동안, 그녀는 단 한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다. 도망치라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쨍쨍하게 울려대는데도 그의 눈길이 발목을 묶어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곁으로 다가선 그가 팔을 들어 토끼 탈을 벗겨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훅 불어 닥쳤는데도 기분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오랜만이군.”
그의 말대로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인우의 음성은 그녀의 손끝을 탄 떨림을 전신으로 퍼져들게 만들었다. 흐르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가슴에 심어놓은 옛사랑을 대면하는 건 참 지독한 일이었다. 좋은 모습은 둘째치더라도 좀 더 깨끗한 모습으로 마주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별 이후로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한눈에 반할만큼 멋있고 가슴이 설렐 만큼 세련된 모습이었다. 우습게도 그의 아이를 키워온 그녀에게만 40년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이 순간이 못 견디게 초라했다.
적랑의 로맨스 장편 소설 『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