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길 잃은 소녀, 나란토야!
살아남기 위해 사막의 도살자가 된 십자군 수장, 발란!
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횡단하는 여정에 나선 그녀는
거친 광야를 지나 혼돈의 사막에서, 신에게 버림받은 궁극의 맹수를 만난다.
메마르고 곤고한 삶 속에서 서로를 구원한 그들의 폭풍 같은 사랑 이야기!
「거친 세상에서 홀로 남은 그들이 찾은 소명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신앙이었다.」
[본문 중에서]
“이리 와.”
아로는 가까이 다가오라는 그의 손짓에 쭈뼛쭈뼛 그의 곁으로 발을 내디뎠다.
검댕과 모래 먼지, 꾸덕꾸덕하게 굳은 혈흔이 묻었을 때도 잘생긴 얼굴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깨끗하게 씻은 그의 모습이 이 정도라고는 짐작하지 못했기에, 아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놀라운 건 검은빛에 가까운 짙푸른 색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눈동자 색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자수정 빛이 도는 짙푸른 색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로는 이런 얼굴 어디에 그런 야만적이고 피에 굶주린 전사의 모습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던 아로는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를 이상한 표정이었다. 마치 어떻게 해야 웃음이 터지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쩔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의 우스꽝스런 표정과 손짓에 놀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던 아로는 작게 항의를 했다.
“이름을 불러 주세요! 작은 짐승도 제각각의 이름이 있는데 왜 제게 손짓을 하시는 겁니까?”
알아듣든지 말든지 아로는 무슬림어로 야무지게 내뱉었다.
‘이것 봐라’라는 표정으로 발란은 아로를 내려다보며 팔짱을 꼈다. 토마스는 기겁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랍게도 레녹스 백작은 거의 원어민만큼이나 유려한 회교도들의 언어로 아로의 항의를 받아들였다.
“좋아, 그러지.”
어느 정도 그가 이 나라 말을 할 줄 알리라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아로는 의외로 너무나 정확한 그의 발음에 깜짝 놀랐다.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지만 정작 이름을 묻자 아로는 잠시 우물거렸다. 멋지게 누구누구의 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가족이 없었다. 아로는 조금 계면쩍은 느낌이었다.
“아로……요.”
“아로?”
그것뿐이냐고 비웃는 느낌에 아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는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루치아노 수사와 안드레아 수사를 모시고 있는 동방 기독교 네스토리우스 교단의 임시 독경사이자 수사 후보 아로요!”
아로는 이번엔 좀 더 길게 붙여 보았다. 그런데 그럴듯해지기는커녕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토마스가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작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아로는 화가 났다. 그녀의 초라한 처지를 대놓고 비웃다니, 너무 예의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조금 전까지 마치 웃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제대로 미소도 짓지 못하던 그가 점점 크게,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시원시원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로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도움을 청하고자 토마스를 바라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토마스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활짝 웃고 있는 발란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연신 두 눈을 깜빡이며 레녹스 백작을 살피는 중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마음껏 비웃다 지친 레녹스 백작은 이윽고 웃음을 멈추고 숨을 헐떡였다.
“알았다, 아로. 앞으로는 아로라고 불러 주마. 이상한 이름이지만 네 소개가 걸작이로구나.”
아로는 발란이 계속 자신을 놀리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