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그날 밤엔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한차례 먹장의 흑운 뒤덮인 어두운 폭우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빗줄기가 너무도 거칠게 쏟아져 그 안에 서린 추위가 곧 겨울의 그것과 같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아슬아슬해서 볼 수가 없잖아.” 운소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갤 들고 비에 흠뻑 젖은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곤 오른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 숨을 불어넣듯 눈에 붙은 손을 떼어 내곤 이젠 처마 끝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린 살아 숨을 쉬는 투명히 반짝거리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운소가 입술을 열었다. “아마도 알고 있었겠지.” 톡톡톡……. 바닥으로 추락하는 낱알의 빗방울은 하나같이 전조와 같이 바닥에 떨어져 모두 터져 버리고 깨져 형체를 잃었다. “지상에 닿는 순간 제 몸이 부서져 버린다는 사실을.” 지상에 떨어지고 부스러져 퍼져 흘러 나가는 빗방울의 잔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그런 저들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관망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일 거야.” 밤비의 위력은 한낮에 내리는 비보다 가히 놀라울 만큼 강력하게 다가왔다. 실로 강하지만 묻은 티라곤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이다. 밤인데도 이렇게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 그 속에 든 건 분명 속을 내비치는 유리 거울일 거라고 운소는 생각했다. 그 생생한 것을 그저 말간 눈으로 운소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아름답잖아. 연약하지만 깨끗이 반짝이는 저들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바라만 보는 건 어쩐지 너무 미안한 일이야.” 그때였다. 운소가 자리에서 사뿐히 일어나 두 발을 떼고 저 차가운 빗줄기 속으로 뛰어 들어 간 것은. “운소야!” 뻗치는 기서의 손보다 운소가 더 빨랐다. 운소는 기서의 손끝이 닿지조차 않는 저 빗속으로 막을 치고 들어가 버렸다. 빗속에서 운소는 방긋 웃는 얼굴로 기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서는 저 앞으로 뻗어 빗물만 잔뜩 묻힌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윽고 그 손을 떨어뜨리고 빗속에 서 있는 운소를 보고 말을 잃고 말았다. 빗속에 선 운소는 어린아이처럼 비를 잔뜩 맞으며 그 속에서 오른발 뒤꿈치 뒤로 왼발을 가져다가 놓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후 입고 있던 새하얀 원피스의 스커트 양 옆 자락을 사라락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잡곤 커티시를 해 보였다. 그 동작 하나 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빛을 머금은 듯 숙연해졌다. 저리 차디찬 비가 운소인 양 투명한 운소가 비인 양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기서는 넋을 잃고 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소는 구부렸던 무릎을 펴곤 빗속에서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어린아이처럼 빗속에서 뛰놀았다. 보다 더 굵어진 거칠은 빗발이 운소의 몸을 부서뜨릴 듯 사납게 두들겨 댔다. 하늘하늘 움직이는 운소의 몸이 너무 가늘어서 저러다 곧 부서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위태로워 보였다. 운소의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하얀 숨결은 까만 어둠과 시린 빗물에 묘한 조화를 이루고 안개처럼 부유하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쏴아……. 빗소리와 함께 섞이어 버린 운소가 저대로 제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기서는 빗속을 뚫고 들어가 다급히 두 손을 뻗쳐 운소를 끌어안았다. 흠뻑 비에 젖어 운소와 함께 빗속, 빗소리, 차디찬 우각(雨脚)에 묻혀 기서는 운소를 가슴에 안았다. 쏴아……. 낱낱의 빗방울들이 모여 만드는 차가운 전주곡은 가슴 한 귀퉁이로 흘러 들어와 가장자리부터 적시며 내부 깊숙이로 들어와 번졌다. “부서지는 줄 알았어.” 기서는 운소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기서의 하얀 숨결이 살포시 운소의 정수리 위에 내려앉았다. 운소의 등을 감싼 손이 있으면 운소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기서의 손이 있다. “난, 부서지지 않아. 빗방울이 아닌 걸.” 운소는 기서의 비에 젖은 등을 가만히 한 손으로 꼭 붙잡곤 웃는 얼굴로 말했다. 기서의 왼쪽 가슴에 오른쪽 뺨을 대고 눈으론 알알의 빗방울을 보았다.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어. 하나같이 모두 다 다르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다음에 보게 되더라도 그 비는 오늘과는 또 다른 비인 거야. 저들을 볼 수 있는 건 오늘 뿐인 건데. 다음에 보는 비도 똑같은 비라고 생각해 버리잖아. 그동안 수많은 빗방울들을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빗방울을 만난 적은 없는 거야. 살면서 얼마나 많은 빗방울들과 만나고 헤어졌을까. 나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만남과 헤어짐에 무감각해지고 무덤덤해지는 일은 비단 비 뿐만은 아닐 텐데.” “…….” “오늘만 내리고 말 비라면 눈에 담아 두지 말 걸 그랬어.” 운소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폭우는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듯하더니 빛을 잃은 별처럼 점차 힘을 잃고 미약해져 가무스름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미리보기] 저녁 식사를 마치고 기서는 달빛 속에 청연한 김 감도는 머그잔을 양 손에 들고 운소가 있는 툇마루로 다가가 운소에게 우유가 담긴 머그잔을 건네주곤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운소는 머그잔을 건네받으며 두 손으로 그것을 감싸 쥐곤 방긋 웃었다. 기서는 블랙커피 믹스가 소용돌이치는 자신의 머그잔을 잠시 물끄러미 응시하고는 그 속에서 하얗게 일고 있는 빛 없는 제 마음 같은 와동이 잦아들 때 즈음 머그잔에 입술을 댔다. “요즘 통 홍차는 끓이지 않는 것 같던데…….”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기서는 저 앞으로 보이는 운소의 키다리 방울토마토를 쳐다보며 어쩐지 뜸해진 운소의 홍차 끓이는 시간에 대해서 넌지시 물었다. 운소는 두 눈에 설핏 머금은 쓸쓸한 눈빛을 하곤 시야를 멀리 내다봤다. “응, 이제 홍차는 끓이지 않아.” 상념이 묻어나는 고요한 시선을 들고 운소는 차분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하곤 키다리 방울토마토에게 시선을 두었다. 묻지 않곤 있지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기서의 의문을 품은 눈길을 느끼며 운소는 대답을 이어 나갔다. “잘 봐.” 운소는 팔 하나를 저 앞으로 곧게 뻗어 손끝으로 키다리 방울토마토를 가리켰다. 기서의 시선이 운소의 검지 끝을 따라 키다리 방울토마토에게 가 닿았다. “보여?” 심중을 알 수 없는 운소의 물음에 기서의 두 눈이 자못 커졌다. 운소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기서의 눈은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찬찬히 방울토마토를 살펴보았다. 기서의 청현한 눈에 보이는 키다리 방울토마토는 그새 불쑥 더 자라 얼마 전 줄기를 나무 지지대로 단단히 덧대어 받쳐 세워 주고 담장에 줄을 매 놓아 그곳을 감기 시작했다. “홍차가 없어도 저렇게 잘 자라는 녀석이야.” 운소의 입가에 드리워진 희미한 미소 뒤로 서운한 기색이 자리했다.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 담장에 닿는 녀석인 걸. 화분이 아닌 텃밭에서 자라는 야생 감각이 뛰어난 녀석인 걸. 처음부터 홍차 같은 건 필요치 않았던 거야. 한 번쯤은 홍차를 그리워도 하겠지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심한 녀석, 너무 잘…… 자라잖아…… 저렇게 자라 기특해야 하는데 어째서 난 서운한 감정이 먼저 드는 걸까. 아마도, 그건…… 내가 녀석과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일 거야.” 운소는 조금씩, 조금씩 식어가는 흰 우유 속으로 부드러이 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난, 녀석의 방울토마토는 먹을 수 없어…….” 기서가 운소를 두 팔로 감싸 옆으로 얼싸안은 것은 그때였다. “난, 말이지.” 운소에게로 기울어진 기서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녀의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저 녀석을 볼 때마다 질투가 나서 녀석을 네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둘까 생각도 해 보고 집 안의 홍차란 홍차는 모조리 다 숨겨 놓을까 생각도 했었어. 네가 녀석에게 붙인 키다리 방울토마토란 이름마저 부러워서 차라리 내가 저 녀석이었으면 했어. 내가 키다리 방울토마토였으면 좋겠다고 말이지…… 그러면 네가 날 좀 더 봐 주진 않을까 하고. 녀석에게 주는 홍차를 끓이면서 홍차를 우리는 시간에 녀석에게만 들려주는 혹 무슨 다른 의미라도 있는 건 아닌지 너의 속삭임마저 듣고 싶어서 난 언제나 네게 귀를 기울이고 있어. 네가 저 녀석을 생각하는 십분의 일 아니 일의 그 반의 반 만이라도 네가 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운소는 새하얀 솜 같은 우유가 든 머그잔을 두 손에 꼭 쥐고 기서의 팔에 얼싸안긴 채로 있었다. “널 이렇게 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사라질까 난 두려워.” 기서는 더욱 꼭 운소를 끌어안았다. 운소는 한쪽 어깨 위로 가볍게 기울어지며 쏟아지는 기서의 앞머리카락을 보았고 그 가느다란 것이 가는 실처럼 하느작하느작 떨려오고 있는 것을 나른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기서가 기울인 고갤 들고 운소의 맑은 두 눈에 눈을 마주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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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Blue
Mr.Blue2015/04/21
  • 現在の作品화음(花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