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7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장장 7년을 희생한 대가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부친의 유골을 뿌리면서 연수정은 다시 태어났다.
복수의 화신으로.
“날 얼마에 사줄래요?”
1억.
까짓 1억 따위, 도와 달라고 했으면 그냥 줄 수도 있었다.
가능하면 코스모스를 연상시키는 여자에게 이런 더러운 제안 같은 것, 받고 싶지 않았다.
장-루이는 연수정이라는 여자와, 아니 어느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
눈앞의 여인은 치명적인 유혹을 하며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이건, 은밀한 제안이 아니라 더러운 제안이다.
[본문 내용 중에서]
“5분 주겠어. 그 하고 싶다는 얘기 해 봐.”
“여기서는 곤란한데요.”
수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쉬울 거라는 계산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앞의 상대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것 같다.
“그 이유는?”
“은밀한 제안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할 수 없거든요.”
“은……밀한 제안?”
“그래요.”
턱을 올려 들며 도도하게 대답을 하는 여인의 눈동자 안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불빛 탓인지 처음 만났던 날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알았어. 따라와.”
수정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길게 내쉬고 성큼성큼 앞서 가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반짝반짝.
카드 키를 긁자 문을 열어도 좋다는 초록색 신호가 들어왔다. 루이가 육중한 나무문을 연 후 손으로 잡았다. 고갯짓은 먼저 들어가라는 지시겠지. 그녀가 며칠 전에 왔던 공간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앉으라거나 마실 것을 주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어.”
루이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을 모아 삼각형을 만들며 거만하게 말을 마쳤다.
상대는 정복하기에는 너무 힘든 커다란 산이다. 휴우. 일단 심호흡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장루이 씨께서 제안하셨던…….”
차마 말을 잇기 힘들어 말꼬리를 내렸다.
“무슨 제안? 아무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 집어서 알려 줘야 할 것 같아.”
“아까는 제가 명함 얘기를 꺼냈을 때 그걸 찢어 버린 건 저라고 하시기에 전…….”
“아, 그래. 그대가 명함을 찢어 버렸던 것까진 기억나. 단, 내가 왜 그랬는지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야.”
“그, 그 명함은…….”
갑자기 뺨이 확 붉어졌다. 아무리 각오를 하고 왔다지만 어떻게 상대가 자신의 몸을 사 준다며 명함을 건넸다는 말을 할까? 수정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붕어처럼 입만 벙끗거렸다.
“중요한 저녁 약속을 취소한 것은 당신이 우물거리며 시간 낭비를 해도 좋다는 건 아니었어. 그러니 어서 그 은밀한 제안이라는 걸 얘기해 보라고. 못 하겠으면 문이 어디 있는지 알 테니 그만 나가 주든가.”
“날, 사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아직 그 제의가 유효하냐고 묻기 위해 왔어요!”
“아, 지금 그대는 자신을 사 달라고 내게 부탁을 하러 온 것이군. 그런데 그런 식으로 도도하게 말하는 게 언제부터 부탁이 됐지?”
루이가 거만하게 고개를 살짝 위로 쳐들며 대답을 마쳤다.
“오호라, 드디어 그 잘난 애인에게 차인 거군.”
“그래요.”
“돈은 왜? 그 녀석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그래서 돈이 필요한 거야?”
“나도 당신 같은 사람과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느라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하기 싫어요. 좋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때 비싸게 쳐주겠다고 했죠? 그렇다면 내 몸을 얼마에 사 줄 건데요?”
뜨거운 것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지만 안간힘을 써서 할 말을 마쳤다.
“좋아. 원하는 가격을 불러 봐.”
“1억.”
“1……억이라?”
상대의 얼굴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소리 톤이 비웃는 것처럼 낮게 울렸다.
“날 사 줄 건지 아닌지, 예스인지 노인지 간단하게 대답해 주세요.”
지금 믿을 곳이라고는 그밖에 없지만 구차하게 물고 늘어진다고 결과가 바뀔 리 없을 것이다. 비록 백도, 연줄도 없는 자신이 민상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선 상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더 이상 비굴하게 사정하는 것은 싫었다.
“아무리 좋은 보석이라도 말이야, 자르기 전 원석일 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지. 벗어.”
“네?”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해서 눈을 치켜떴다.
“옷을 벗어 보라고 했어.”
“…….”
수치스러운 요구에 몸이 떨려 왔다.
“싫으면 그만두지. 하지만 물건의 상태를 파악해야 이쪽에서도 비싼 돈을 내고 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지 않겠어? 아, 물론 선택은 당신 몫이야. 강요는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