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우리 한 번만 눈 딱 감고 넘어가자. 응?”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그럼 우리 이대로 절교하자고? 자그마치 신생아실에서부터 이어 온 우정인데 끝내자고?” “계속 친구로 있기에는 어젯밤 기억이 너무 생, 생, 해. 고로 나는 너랑 이제 친구 못해.” X 됐다! 이것 말고는 지금 상황을 표현할 말이 없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족보다 더 가까이 지내던 ‘남자사람친구’와 그걸 했다니! 그것도 술에 취해 기억조차 안 나는데!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냐고! 타고나길 복이 없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로 ‘다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덕분인지 일복 하나는 억세게 많은 여자 정다복.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남자 복은 지지리도 없다. 어쩌다 하게 된 소개팅에도 웬 거지같은 남자만 나오고, 홧김에 한국에 오랜만에 귀국한 자신의 절친, 세계적인 발레리노인 민호의 호텔 방에 간 다복은 그만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 25년을 친구로 지내온 민호와 한 침대에, 그것도 알몸인 채로 깨어나게 된다! 평생지기 민호를 잃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날의 일을 실수로 묻으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다시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한다. 친구와 십구 사이. 그 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본문 내용 중에서] “난 정말 기…….” “억이 안 나겠지.” 다복이 민호를 보며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25년 우정을 쌓아 오면서 그의 눈을 마주치는 게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당장이라도 시선을 옆으로 피해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지는 거였다. 더는 물러나선 안 되었다. “그냥 없…….” “었던 일로 하자고?” 이번에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어차피 피차 좋…….” “은 기억은 아닐 테니까?” “……어.” 그녀가 꼬르륵 고개를 떨어트렸다. 장승처럼 앞에 서 있던 그가 책상 의자를 끌고 와 앞에 앉았다. 무릎이 닿을 듯 말 듯했다. 다복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경직시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손이 닿으면 닿는가 보다, 발이 닿으면 닿는가 보다, 어깨가 닿으면 그것 또한 닿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두 사람이었다. 한참이나 사람 애간장을 태우며 말이 없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다복.” “어.” “그건 안 되겠는데.” “어?” “없었던 일로 하는 거, 그건 안 되겠다고.” “아, 왜?” 그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그녀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없었던 일로 하기엔 내 기억이 너무 생, 생, 해.” 일부러 생생해, 라는 말을 스타카토처럼 끊어서 하는 민호였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미 어떻게 처분할지 마음을 굳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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