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연희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끝낸 휘를 어느 순간부터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곧 스러질 별빛처럼 곡진하여 휘는 애먼 바닥에 시선을 던져둔 채 피식 웃었다.
“내 하는 꼴에 지친 전하와 중전께서 혼인을 추진하며
화공을 보내겠다고 하셨을 때,
사실 비뚤어진 마음으로 다짐했던 것이 있었네.
어차피 혼인 따위를 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초상 따위를 그릴 필요 없이 혼인이야 그저 아무하고나 치러버리겠다고……
그래서 화공이 오기로 한 날 아침에 나는 눈을 뜨자마자 마루에 나가있었지.
팔순 노파이든 다섯 살 어린아이이든 상관없으니,
오늘 내 집 대문을 첫 번째로 넘어서는 여인을 무조건 배필로 맞이하겠다고.
그러면 그림 따위를 그릴 필요도 없을 테니,
화공이 찾아오면 그대로 박대하여 내쫓을 생각이었어.”
연희의 머릿속으로 중궁전의 분부를 받아 휘의 저택으로 향하던 날의 아침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어쩐 일인지 의자까지 놓고 마루에 나와 앉아있던 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 의자가 뒤로 넘어지도록 벌떡 일어서서
한동안 노려보기만 했었다.
그때는 그것이 단지 원치 않는 혼인을 위해 파견된 화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날 대문을 넘어서 들어선 것이 자네였네.”
연희가 그런 것처럼 휘 역시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여자로 착각할 만큼 선이 고운 미남화공이 정말로 여인이었을 줄은.
그래서 연희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휘는 혼자서 남몰래 웃었었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하는 말을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나를 그리겠다고 찾아온 화공이자……그날 저택의 문간을 넘어선 첫 번째 여인.”
“…….”
“그대였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