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창우야, 우린 서로 친한 친구 사이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녀의 차분한 대꾸에 창우는 냉장고 안에서 꺼낸 캔 맥주 한 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차가운 맥주만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을 순진이 담담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의 흥분한 네 모습 무척 낯설게 느껴져. 평소의 너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순진의 말에 그는 벗어두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갈게.”
“창우야!”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 목소리에도 창우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나도 이젠 그만 과거의 끔찍했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른 여자들처럼 한 남자를 사랑하며 핑크빛 감상에 젖어들고 싶단 말이야! 난 그러면 안 되는 거니? 내겐 그런 권리조차 없는 거야? 너의 지금 이런 모습이 날 얼마나 당황하게 만드는지 알아?”
그녀의 앙칼진 소리에 창우의 싸늘했던 안색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까짓 과거 잊어버리면 안 돼? 이젠 묻어 버릴 때도 됐잖아?”
“어떻게 잊어?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한 놈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의 사내들한테 내 순결을 짓밟혔어. 온몸이 성한 곳 한 군데 없이 물리고, 밟히고, 또 짓눌렸어. 다행히 네 덕분에 지금은 그때의 끔찍했던 악몽을 잘 견뎌내고 있지만 아직도 그 아물지 않은 상처는 내 가슴 한구석에 더러운 찌꺼기처럼 남아 있단 말이야!
애처롭게 울부짖는 순진의 말에 창우가 다시 그녀 곁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미안해. 순진아. 네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난 단지…….”
조용히 다음 말을 그대로 삼켜버린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녀의 들썩거리는 두 어깨를 다정히 끌어당기며 창우는 착잡한 심정으로 순진의 시선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