あらすじ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속이 훤히 보이는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했다. 넘치는 기사도 정신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고 그 폭풍우와 함께 꼼짝없이 그 집에 머물러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전기까지 나가버린 그 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등을 안아버린 여자에게 벌써 모든 것을 빼앗겨 버렸던 것일까?
정신세계를 알 수 없는 특이한 여자라 생각했지만, 사랑해 버렸다.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그녀가 말했지만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기에 쉿! 모든 것을 감춰야 했다.
“난, 대단한 여자거든, 아무나 사랑해선 안 되는 여자.”
모두가 몰라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유를 위해 쉿!,
-본문 중에서-
“너무 피곤하지만 그래도 좋아.”
리라가 바보처럼 웃으며 좋다고 말하는데 순간 현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좋던 어린놈이?’ 하고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꾹 눌러 담는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실실 웃는 리라를 보며 샌드위치를 빼앗아 확 던져 버리고 싶었다.
“다음번에는 찬호가 시간이 되려나? 안 되면 누구랑 하지?”
내가 사다 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음 일정을 고민한다. 누구랑? 밤에 하는 걸 누구랑? 한둘이, 이 여자에게 남자는 한둘이 아닌 거다.
“저랑 하십시오.”
리라의 고민에 답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딴 놈들 고르지 말고 나랑 하자는 어이없는 대답에 현 자신도 놀랐다. 하지만 당사자인 리라는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뭘 너랑 해?”
“밤에 하는 거요.”
이런, 현은 또 대답했다.
“내가 밤에 뭘 하는지 알고 너랑 하재? 너 나 미행했냐?”
이번에는 다소 심각하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앞으로는 좀 해야겠습니다. 미행.”
“그러기만 해봐! 가만 안 둘 거야.”
“그럼 자기 관리를 좀 하란 말입니다.”
자기 관리? 리라는 눈동자를 굴리고 머리를 굴리며 내가 어떤 관리를 못 했을지 생각해 봤다.
“내 관리 뭐?”
“회사에서 잠이나 자고, 아 정말!”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넘기는 현을 리라는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회사에서 잠 좀 잤다고 이러는 거야?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자기 관리 어쩌고 하지? 마음에 들지 않아 매몰차게 째려봤다. 그런데 자신을 보는 현의 눈빛은 아주 무서웠다. 아무래도 하루 외박한 것으로 비서에게 고분고분 처신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감금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리라는 조용히 현의 시선을 피해 샌드위치를 먹으며 중얼거린다.
“회사에서 잠 좀 잤다고 잔소리하기는, 누가 보면 지가 상사고 내가 비서인 줄 알겠네.”
“상사 대우하지 말라셔서 친구처럼 대할까 생각 중입니다.”
순간 움찔한 리라다. 정말 친구처럼 대할 것 같은 이 느낌. 그렇게 되면 왠지 자신이 더 많이 밀릴 것 같다. 상사인 지금도 이렇게 밀리는데 친구 취급이라니 아무래도 처음부터 말을 잘못했다. 정정을 해야 한다.
“그 말은 실수였어. 이젠 극진한 상사 대우를 해 주도록 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직위는 제가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전 회장님 직속으로 회장님 명령을 직접 받으니까요.”
“정말?”
회장님 명령을 직접 받는다고? 정말 요주의 인물이다. 최대한 빨리 퇴사시킬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그래도 지금은 내 비서야.”
“아니죠. 회장님 명령으로 본부장님을 수행 중이나 전 여전히 회장님 소속입니다.”
‘그래서 네가 더 싫다고!’ 리라는 소리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담으며 현의 강경한 태도를 살폈다. 지금까지 아니 어제까지는 어느 정도 나의 위치가 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순식간에 모든 것이 역전된 듯한 분위기, 정말 본부장보다 회장 비서가 더 높은 건가?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 룰을 어찌 알겠는가? 아버지의 속을 그리고 그 속을 명령 받은 저놈의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