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궁지에 몰린 계약직 사원 차수영. JN그룹의 유일무이한 후계자 권유안 이사. 둘 사이에는 수억 광년의 간극이 존재했다. 그는 제법 선한 어조로 악마 같은 제의를 해왔다. “삶이 거창해 봐야 고작 이 작은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에요. 그것도 우리 일은 이 집, 고작 저 침대에서 벌어지게 될 일이라고.” 수영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설득을 당하고 있는 건지, 유혹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암흑 속을 사는 그녀에게 내려진 혼란하고도 찬란한 동아줄. 계약을 수락하는 순간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남자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를 알지도 못했다. 그저 1년짜리 계약직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얼마나 필사적이었던가. 그랬었는데. 언제부터 그러지 않게 되었더라? 언제부터 그게 아닌 다른 것에 필사적이게 되었더라?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따가웠다. “예쁘다고 칭찬해도 돼요?” 이 남자 앞에서 헐벗고 누운 채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주 사랑스럽네요. 내 상상 속에서보다 훨씬 더.” 치열한 여자와 고독한 남자의 뒤틀린 열망이 엉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