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 “절대미혼, 풍생로사.” 절대 결혼하지 않으며 바람처럼 살다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영훈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병적으로 싫어하고 ‘순정’이라는 말만 들으면 혈압이 오르는 독특한 남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 놈의 순정이라는 이름 아래 평생 청승떠는 모습을 질리도록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아니면 결혼을 하질 말던가! 마음은 딴 데 있으면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한 그의 부친과 조부는 당연히 결혼생활 내내 불행했고, 결말 또한 처참했다. 그 모든 과정을 보며 영훈은 자연스럽게 익혀버렸다. 사랑이란 건 유치한 감정이고, 순정이란 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지긋지긋한 감정의 찌꺼기이며, 결혼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그는 오늘도 절대미혼을 강조한다. 그것만이 풍생로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최가을 : “정신일도, 조강지처.” 정신을 차려야 조강지처가 될 수 있다.
가을은 어린 시절부터 말보다 먼저 배운 것이 여인네들의 한숨소리였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되어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부모에게 등 떠밀려 만석지기와 재혼한 가을의 외조모는 남편의 바람으로 평생 속을 끓여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노름과 빚보증으로 전 재산을 잃은 남편 때문에 갖은 개고생을 다했다. 딸 하나를 낳았건만 숙맥인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의 불장난으로 21살 어린 나이에 애 엄마가 된 후 사고사 하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가을은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이런 가문의 영향으로 가을은 세상의 모든 바람둥이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바람둥이는 다 뒈져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평소 소신이었다.
한채연의 로맨스 장편 소설 『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