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판도라의 상자.
그걸 열어버린 느낌이었다.
이성의 충고를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기어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탓.
“아이를 가졌어요.”
“지워.”
애원하듯 흘러나왔던 해영의 말과 맞받아치던 자신의 경멸어린 음성이 재신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양 변호사한테 친권자 소송 준비하라고 해.”
그녀.
“해봐. 즐겨줄 테니까.”
유혹하려고 했지만 선뜻 다가서기 힘겨웠다. 그걸 증명하듯 재신이 그녀와 거리를 좁히며 다가올수록 해영의 다리가 저절로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치려면 지금 바로 뒤를 돌아. 문을 열고 죽어라 뛰면 돼.”
낮은 음성으로 충고하는 재신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스며있었다. 해명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처럼 발목에 힘을 줬다. 뒷걸음이나 치는 겁먹은 모습을 보이고자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