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이제 그대 것이야. 내가, 그대에게 준 것이다.”
보통 사람처럼 분노하고 경멸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오히려 세연은 가림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녀가 절망감에 자결을 하더라도 자신의 계획을 꾸며나가는 것만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림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한쪽에 물감을 바른 다음 반으로 접었다가 펼친 종이처럼 똑같은 무늬를 가진 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맞닥뜨려버린.
“이상한가?”
가림은 그렇게 묻는 세연을 바라보며 낮게 대답했다.
“누가……이유 없이 뭘 준적 없어요.”
“그렇다면 내가 처음이로군.”
그렇게 말하며 세연은 한 발자국 다가가 가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한의 여인들처럼 비녀나 가채를 하지 않고 그냥 빗어 내린 긴 머리카락은 벌꿀에서 뽑아낸 것 같았다.
“상처는 다 나았나.”
가림은 대답하는 대신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나무껍질에 긁혀 까졌던 상처는 이제 다 아물어 딱지만 남아 있었다.
“그대는 언제쯤 알까.”
그 중얼거림에 담긴 의미를 가림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 다가와 적요하지만 끊임없이 맴도는 세연이라는 남자의 행동이 궁금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처음이었다.
조은애의 로맨스 장편 소설 『세야담 (世野譚)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