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구나, 피었구나. 혈루(血淚)를 마시더니 혈매화(血梅花)가 피었구나.
심장에 뿌리 내린 은장도가 안타까이 흔들리니 눈꽃 같은 저고리에 송이송이 느는구나.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투기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추한 마음 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원귀(寃鬼)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혜현.
단숨에 가슴을 향해 내지른 은장도의 예리한 칼날이 지어미의 가슴 깊숙한 곳을 이미 제 집으로 삼았으니 지어미를 잃은 지아비의 울음이 달조차 가리는구나.
피었구나, 피었구나. 진흙탕에서 피었구나. 청정(淸淨)하고 청정한 부용(芙蓉)이 피었구나.
진흙탕에 뿌리 내린 연심이 지어미를 향한 부용을 피웠구나.
“받으세요. 더러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이리 청정한 모습으로 피워내는 꽃이 바로 이 부용입니다. 내가 어리석어 그대에게 상처를 주었어요. 어리석은 지난 날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발판 삼아 이리 청정한 마음을 만들어 그대에게 드릴 것입니다. 바로 이 부용처럼 말입니다.”
--- 효건.
김은희의 로맨스 장편 소설 『해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