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려 떠밀리듯 나간 선 자리
최악의 상황에서 이령을 구해준 건 지금의 남편이었다.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것처럼 보입니까?”
거대 기업 세명 그룹의 후계자 이한.
“요즘 집중적으로 선을 보는 것 같던데. 결혼이 급합니까?”
“동생이 미술관을 맡게 됐거든요. 제가 버티고 있으면 상황이 복잡해지니까.”
호기심인가.
“그래서 순순히 밀려날 예정이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당시 이령은 완벽하게 설 자리를 잃은 상태였다.
“아니. 아주 방법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남자의 날렵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품평이라도 하는 듯한 눈빛에 이령이 그를 노려봤을 때였다.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와 결혼하는 건 어떻습니까? 나도 마침 꼭 결혼이 필요하던 참인데.”
“사촌 형이 제 소문 이야긴 않던가요? 입이 무거워 보이진 않았는데.”
결혼 시장에선 누구라도 꺼리는 연애 스캔들.
또한 결혼상대로선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될 추문.
“그 나이에 연애경험 한두 번쯤 없는 편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
“나하고 한편이 되면 미술관 정도 차지하는 건 쉬운 일일 텐데.”
이 남자와 한편이라면.
그 순간 이령의 머릿속으로 불꽃이 지나갔다.
분명한 한 가지는
이 결혼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