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가 15층에 안 선다.
기사는 "이상 없음" 도장을 찍고 갔다.
부임 사흘째, 관리소장 나건우는 알아버렸다.
이 아파트, 고장 난 게 아니라 삐진 거다.
한양주택 3차. 39년 된 낡은 단지.
삐지면 온수를 끊고, 칭찬하면 수압이 좋아진다.
그리고 어느 밤, 도면에서 지워진 302호를 열어달라고 한다.
"…열어드리겠습니다. 대신 대표회의 의결이 필요합니다."
전 직장에서 도장 한 번 잘못 찍고 업계에서 잘렸다.
양육비가 밀렸고, 여기서 또 잘리면 딸을 못 본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 편도, 주민 편도 못 든다.
지금은 그냥 안 잘리는 게 목표다.
그런데 이 건물이 자꾸 뭔가를 알려준다.
누가 언제 무엇을 실어 왔는지, 어느 집 벽이 잘렸는지.
39년간 제 몸 안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기억하는 목격자.
문제는 그 증언을 적을 칸이 서류에 없다는 것이다.
신청인란에 뭐라고 써야 하나.
'건물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