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보존처리사 윤서린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수상한 고회화 한 점과 마주친다. 조선 후기 제작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여인상. 문제는 그림 속 여자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이다.
죽은 고미술 수집가가 남긴 메모에는 두 줄이 적혀 있다.
‘윤서린에게 전달할 것.’
‘이태겸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말 것.’
그날 현장에 나타난 문화재단 대표 이태겸은 처음 보는 서린을 ‘유월’이라 부른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린의 머릿속에 불타는 방, 밖에서 잠긴 문, 피 묻은 손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문밖에는 이태겸과 같은 얼굴의 남자가 서 있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연구소 침입, 사라지는 사진 원본, 조작된 출입 기록, 수백 년 전부터 반복해서 등장하는 ‘月下’라는 표식. 1930년대부터 2026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사진 속에는 서린과 닮은 여자들이 나타나고, 그 곁에는 언제나 이태겸이 있다.
태겸은 말한다. 서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이미 여섯 번 태어났고, 여섯 번 모두 죽었다고.
서린은 전생도 운명도 믿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것은 종이와 안료, 배접과 장황, 사진과 기록, 그리고 남겨진 흔적뿐이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기로 한다.
200년 전 자신은 왜 죽었는가.
태겸은 정말 자신을 죽인 남자인가.
누가 환생할 때마다 자신을 찾아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왜 누군가는 수백 년 동안 그녀의 이름을 지우고 다시 쓰고 있는가.
이번 생에서 윤서린은 도망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