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이 계약이었다고.”
“네, 그리고 이제 끝났고요.”
남편은 몰랐던 계약 결혼.
3년 계약의 끝은 이혼이어야 했다.
여름은 무진이 싫진 않았다.
단지, 제 삶까지도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 친부를 몰락시키고
진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그런데.
“너는 처음부터 이별을 염두에 두고 나랑 살았는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지금껏 무심했으니 이혼에도 무심할 줄 알았건만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럴까.
“나는 너랑 이혼하고 싶지 않고, 이 결혼은 진짜가 아니니까. 네가 나를 원하게 하는 것까지도 내 몫이겠지.”
* * *
“네가 바라는 게 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어. 이해했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니까.”
무진의 음성이 낮게 이어졌다.
“하지만 노력 중이야.”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꼭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 기분이었다.
“네가 원하는 세상과 비슷해지려고.”
여름은 괜히 시선을 돌렸다. 젖은 셔츠의 감촉과 눅진한 비 냄새, 우산 손잡이를 쥔 단단한 손등까지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가 사는 세상과 그녀가 살아가고 싶은 곳이 비슷해지려면 아마 하늘이 한 번쯤은 완전히 뒤집혀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면…….”
무진이 흘러내린 여름의 머리칼을 손끝으로 쓸어 올렸다.
“그냥 내 세계에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