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마주친 순간, 백은결은 마치 내가 엄청난 인력으로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강의실을 가로질러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 “…….” “나는 백은결이야.” 번트 엄버와 꼭 닮은 색의 눈동자 아래로 알 수 없는 눈물이 한 방울 가련히 흘렀다. 너무 이질적인 광경에 그 애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이었다. “나…….” 성큼성큼 다가와서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하던 그 애는 “너한테 반했어.” 그렇지 않아도 순탄할 것 같지 않던 내 학교생활에 폭탄을 던졌다. 스무 살의 어느 봄. 백은결이 내 인생에 등장한 첫날이었다. *** 하늘이 엷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실구름 스러지는 빛을 머금은 하늘처럼 나를 담은 백은결 눈동자도 시시각각 색이 변했다. 빨갛고 노랗다가 푸른 어둠을 삼키고도 반짝거리는 백은결이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 다혜야. “근데 그러면 너 평생 아무 데도 못 가.” 노을과 함께 내 속에서 끓던 뭔가가 펑 터졌다. “내가 어딜 가든, 평생 아무 데도 못 가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 “왜? 나랑 이러고 있으니까 네가 진짜 내 남자 친구라도 된 것 같아?” “…….” “백은결 너 아무것도 아니야.” 혼자 씩씩대고 있다가 드물게 백은결이 조용하다는 걸 깨닫는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샛노란 머리가 조금 흐트러진 백은결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이 새빨갰다. 그러나 끝내 울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 반한 거.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그게 다혜 너한테 무기가 되는 거면, 휘둘러. 나 괜찮아.” 감정이 꾹꾹 눌러 담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근데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하지 마. 나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인 백은결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같이 우주도 본 사이잖아.” 그거 엄청 아무 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