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지역, 기관, 역사와 상이한 허구의 내용입니다.
* 꼿발은 발뒤꿈치를 든 발을 뜻하는 '까치발'의 전남 방언입니다.
산사태로 온 가족을 잃고 고모에게 의탁해 힘든 삶을 살아온 최은길은 관상대 공무원이 되어 서울을 떠나 우수골로 온다.
그리고 그날, 새파란 자동차를 탄 남자 금은도를 만났는데,
“아가, 어디까지 가냐? 타그라. 델다 주께.”
“네? 아가… 누가요?”
“음마? 학생이 아니요? 등치도 쩨깐하고 교복 입은 것 멘치로 비서 학생인 줄 알았구만.”
“아니에요. 직장인이에요.”
곰처럼 크고 소처럼 예쁜 눈을 가진 사내를 따라나선 최은길은 우수골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하고, 서울과 달리 순박하고 마음 좋은 이들이 사는 마을에 점차 정을 붙이게 된다.
그 와중에 최은길과는 다른 의미로 정을 붙였는지 금은도가 자꾸만 그의 주변을 맴돌며 먹을 거, 입을 거로 물량 공세를 시작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커다란 남자가 제게 왜 이러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생전 처음 받아 본 호의와 애정을, 제 심보가 간장 종지만 하다고 ‘종지’라고 놀리는 남자의 순정을 믿어도 될까?
* 본문발췌
“우수골은 말여, 고아도 품고 타지서 다리 썰려 온 장애인도 품어. 정신 놔분 반편이도 내친 적이 읎어. 쩌기 낙호 아재가 댕기는 비료 공장 사장도 마흔 넘도록 장개도 안 갔고 지금껏 애인도 죄 남자였어. 그래도 비역질한다고 면전에서 손꾸락질하는 사람 하나 읎다.”
“…….”
“잘은 몰러도 니가 서울서 고생하고 살았던 거 안다. 그리 에릴 때 부모 형제 다 잃었는디 얼마나 힘들었겄냐. 나가 그 설움 다 품어 주고 니 행복하게 해 주고 잪은디. 안 되겄냐.”
말의 끝에는 애원조가 묻어났다. 무겁고 진중했다. 그 무거움이 최은길의 마음을 내리눌렀다. 친척 집에서도 속하지 못하고 튕겨진 가볍고 하찮았던 삶에 중심을 세울 수 있도록, 그가 발끝을 붙잡아 땅 위로 고정해 주는 것 같았다.
“…종지라고 안 부르면, 생각해 볼게요.”
최은길은 목을 가다듬어 조심스레 답을 했다. 절반의 승낙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놓였는지 사내의 얼굴에 짙게 웃음이 배어 나왔다. 눈웃음 속에 파묻힌 선한 눈동자가 몹시도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