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 원형이란 어떤 것인가?한국학 관련 연구자나 인문학자들마다 걸핏하면 우리의 문화 원형을 되살려야 한다느니, 민족의 예술적 원형질을 찾아야 한다느니 말들도 다양하다. 그래서 조용히 물어본다. 그럼 도대체 한국의 문화 원형이란 어떤 것인가?하지만 한국의 문화 원형에 관해 속 시원한 답을 구하기란 당장은 어려울 듯 하다. 그러나 어렴풋하게 나름 느껴오는 실마리는 있다. 사실 우리의 문화 원형이란 게 모두 사라진 게 아닐 것이라는 미미한 희망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약간은 목에 힘을 주고 내지르고 싶은 말이 있다. “문화 원형을 찾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문화 원형을 맞이할 태도를 갖추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듣는 이는 황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 땅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며 지내는 전통 문화 관련 인사들에게 모두 건네주고 싶은 말에 해당한다. 마치 단군어진 속의 풀잎사귀가 9년 홍수의 위난을 겪어내는 과정 속에 걸친 일종의 도롱이와 같은 겉막이임도 모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풀잎을 걸친 단군상을 보고서 어떤 이들은 우리 문화를 원시 상태에서 박제화한다고 억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문화의 원형을 전혀 모르면서 망가뜨리는 사람들은 의외로 허다하다. 자칭 지식인인 척하며 헛배가 부른 사람들도 그러하다. 그라인더로 쇠 날을 가는 주제에 스스럼없이 전통 도검을 복원한다고 대중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처럼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원형조차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겉치레만 원형이라고 거짓을 늘어놓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이를테면 우리의 풍류 정신과 얼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양산도’란 민요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도대체가 그 민요를 제대로 부르는 국악인을 본 적이 없다. 하나같이 탁한 목소리에 발음도 부정확하고. 그게 무슨 변화의 미학이라면 그저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양산도를 정말로 소름 끼치게 잘 부르는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듣거나 본 사람이라면 양산도란 민요가 거룩한 겨레의 풍류 정신과 낭만적인 유희정신을 담아내고 있음에 숙연해지고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안에서 이른바 무형(인간)문화재랍시고 거들먹대듯 거만함으로 성의가 전혀 없이 불러대는 민요 가락을 듣노라면 감동은 애당초 사라지고 무슨 시장판 상인의 악쓰는 소리를 접하는 느낌일 뿐이다. 벼랑에 핀 꽃은 벌을 유인하고자 처절하리만치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고 한다. 처절한 예인 정신이 없이 이미 무형문화재가 되었다고 조율도 안 된 목소리로 감히 전통 민요를 도리어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분노감만 하늘을 찌를 듯한 심정이 떠나지 않는다.결국 사람의 문제인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 문화의 원형은 사실 자본의 논리에 포획당하여 그 원형이 툭하면 변화되고 있다. 시대에 맞게 바뀌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지만 진짜 옛 그대로의 원형을 대중에게 드러낼 때에는 피를 토하는 절실함과 성실함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예전 갓 구운 고려청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망치로 부수어 버리던 예인 고유의 배짱과 의연함이 되살아나야 마땅하다. 목소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젊은 후배 예인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나이가 꽉 찬 노인 무형문화재 선생이라도. 문화의 원형에 갈망하듯이 준비된 사람으로서 본래의 예술 정신을 회복하고 난 뒤라야, 민족 문화의 원형 찾기도 그때 가서야 시작되는 것이리라.신중하고도 차분한 고찰이 요구되는 문화 원형 분야 연구고고학을 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근래 묘하게 불문율처럼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있다. 이상하리만치 예전과 달리 고인돌 이야기를 거론하는 연구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일까? 혹시 고인돌 속에서 드러난 인골의 검사 결과 때문일까?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고고학자들은 인골 이야기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분위기다. 뭐랄까? 산통이 깨어진 느낌? 묘한 허기를 느낄 때와 같은 안타까움과 괜한 짜증이 밀려오는 것 같은 정서도 함께 존재하는 듯싶고.한때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이야기 하려고 하면 마치 입에 거품이라도 문 것처럼 반드시 이야기하며 목소리에 힘까지 들게 하던 레퍼토리가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 따위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찌된 일인지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를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벌써 국민 일반은 충격적인 고고학 뉴스를 받아들인 것일까오늘날 고고학을 하는 연구자들은 예전과는 달리 매우 말을 아끼는 추세이다. 예전처럼 조그만 발굴 유적의 유물을 공개할 때라도 은근히 대단한 것을 한 듯이 잘난 척 하며 거들먹대던 분위기는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바로 고고학 분야란 것을 모르는 철부지는 이제 없다.그래서 고고학은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학문일 수 있다. 조사용 트롤(고고발굴용 흙손)을 긁어대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닌 그저 단순 노동일 뿐이다. 토기 조각 하나라도 만나게 되면 겉 표면에 베풀어진 무늬가 어느 곳 토기와 닮았는지, 재료는 얼마나 가늘고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겠고, 당시 거주인이 혹시 다른 곳에서 가지고 이동한 것은 아닌지 등 실로 복잡한 경우의 수를 상정하는 학문적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이나 역사적 사료를 통해 언급되어야 하는 문화의 원형 문제는 사실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분야인 셈이다. 혹여나 미처 깨닫지 못한 학문의 또 다른 장막을 걷어내지도 못한 채 감히 어줍지도 않게 서툰 소견을 나열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는 언제나 누구도 장담하질 못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학문적 장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기란 거의 신의 영역처럼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우리 문화의 원형 이야기를 마치 기도하는 수도자(修道者)처럼 약간은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형을 이야기한다고 해놓고 신통찮은 지적 정보만을 나열하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