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의 딸 신이와 백목 마을의 수호신 수성, 두 사람이 펼치는 미스터리 기행담.
모든 비밀을 손에 쥔 신이의 어머니는 이미 수 년 전에 자취를 감춘 상황인데…….
운명의 장난 속에 엇갈리고 방황하면서도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운명에 맞서서라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 있을 때, 그 마음은 운명보다도 강력한 인연이 된다.
-본문 중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와룡소 위로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달빛도 별빛도 순식간에 먹구름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산 전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신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와룡소 가운데에서 거품이 일고 있었다.
못 전체가 마치 펄펄 끓는 솥물 같았다.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땅울림 소리도 드세어졌다.
신이는 나무를 의지하고 서서 와룡소의 이변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지축을 흔드는 우레 소리와 함께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얼핏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뇌성이었다.
신이는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무슨 일이 있기나 했냐는 듯 고요해진 와룡소 한가운데에 검은 인영이 서 있었다.
사당에 있던 어머니의 예언서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의 정체는 인간이 아닐 것이었다.
‘와룡소의 이무기……!’
밤하늘을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던 이무기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품에서 주먹만 한 노란 구슬을 꺼내어 달빛에 비춰 보았다.
신이는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영묘한 기운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달빛을 받아 오색으로 빛나는 구슬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까닭이었다.
부귀영화든 불로장생이든 어떠한 소원이라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용의 보패(寶貝), 여의주였다.
신이가 알기로 여의주는 오직 인세의 모든 번뇌와 욕망을 내려놓은 이무기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신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다행이다, 무사히 용이 되었구나.’
(중략)
신이가 주저하는 사이, 여의주를 품속에 갈무리한 용이 와룡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검은 장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용의 뒷모습이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신이가 그를 뒤따라 연못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이를 중심으로 둥글게 퍼진 물결이 용의 발목에 가 닿았다.
우뚝 멈춰 선 용이 뒤를 돌아봤다. 신이는 그제야 용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얼핏 수려한 얼굴이었지만, 형형한 눈빛 때문에 그 생김이 사람 같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이와 같은 영기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단박에 요괴나 산신령을 떠올릴 만큼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었다.